우리는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고
Lost Stars
문 안으로 뛰어들 즈음 오후내 내리던 비는 진눈깨비가 되어 있었다. 조 윈스롭은 모자를 벗어 어깨를 털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체신머리 없이 풀린 날씨에 얼었던 땅이 질척하게 녹아 들러붙는데도 구둣발 옆으로 여전히 먼지가 구르는 곳이었다. 여어, 윈스롭. 해가 지고 있으니 슬금슬금 모여든 범법자 협잡꾼 현상범 낙오자들이 시답잖은 절망을 지껄이고 있을 시간인데 묘하게 숨이 죽어 있다 했더니, 어색한 인사를 건넨 바텐더가 곁눈질하는 바 구석으로 시선을 돌린 윈스롭은 소리없이 숨을 들이켰다.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평소에는 속을 알 수 없었다가 때로는 노인 같아지고 내킬 때는 미남자가 되었다가도 어딘가에서는 소녀가 되는, 어떤 여자. 윈스롭이 오늘 이곳 엘리펀트에서 일곱 시에, 윈스롭은 시계를 확인하고 제 입술을 한번 물었다 놓는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었다.
"오도르만."
조 윈스롭이 뛰어오느라 흐트러졌을 타이를 걱정하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했다. 윈스롭은 숨을 고르는 척 목언저리를 만져보고 나서야 오도르만의 옆에 앉았다.
"요즈음은 오디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같은 걸로."
"당신이 싫어하는 건데요."
"……그냥 맥주나 주십쇼."
내부는 어두웠지만 머리 바로 위에 조명이 있는 탓에 오도르만의 얼굴에는 표정을 분간하기 힘들 만큼 짙게 그림자가 졌다. 고개를 내저은 바텐더가 맥주를 꺼내 주고는 힘내라는 듯 윈스롭의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간다. 이미 패배한 기분으로 윈스롭은 이름 모를 잔 속의 술을 굴리는 오도르만을 훔쳐보았다. 아마,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늘 그런 얼굴이지. 오도르만이 보여 주는 것 중에서는 미소라고 칠 법한 표정이었다. 불쾌하지도, 그러나 즐겁지도 않은 얼굴.
물론 거짓말을 할 때도 오도르만은 그런 얼굴이었고, 본 적은 없지만 화를 내거나 슬퍼할 때도 같은 얼굴일지 몰랐다. 당신이 보낸 고양이는 날 싫어하더군요.
"이름을 윈스롭으로 지은 건 알고 계시는지?"
윈스롭이 오도르만을 만난 것은 그가 범법자 협잡꾼 현상범 낙오자였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아니냐고 하면 달리 할 말은 없지만, 오도르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지 몰라도 윈스롭의 입장에서는 감히 신세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의 빚을 졌다. 그건 그저 말 몇 마디 뿐이었습니다, 윈스롭. 내가 이걸 은혜라고 생각하는 게 부담스러우면 그렇다고 말씀하세요.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알잖아요.
그래서 윈스롭은 오도르만이 저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저 말문이 막혔다. 평소에는 꽤나 달변 취급을 받는데도 딱히 감출 것도 아닌 미숙한 시절을 약점처럼 틀어잡혀서 꼼짝을 못 했다. 어떤 말을 건네도 억지 같고 고집 같으며 유치해지고 마는 기분이었다. 어리석음이 귀여울 나이도 한참을 지난 주제에 처음 가 본 서커스에서 본 조잡한 마술의 답지도 않은 속임수에 꼼짝없이 휘말려 넋을 놓고 만 어린애 꼴이 되는 것이다.
"다행히 윈스롭도 우리 아가씨가 꽤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윈스롭은 그게 꼭 고양이 윈스롭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잔을 비운 오도르만이 손에 턱을 괸다.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소매의 단추를 하나 풀러 걷은 채였다. 그 손목. 아닌가요, 윈스롭?
"……드물게 멋진 분이죠."
오도르만은 굳이 너도 그렇지 않느냐고 소리내서 묻지 않았다. 그건 다소 우아하지 못한 방법이었으니까. 오도르만은 교양 있고 세련된 말씨로 단어 하나 하나를 부드럽게 다듬어 내보냈다. 모서리를 얼마나 갈아내고 기름을 칠했는지 말이 어디로 굴러가는지도 모를 문장들이었다. 세상 지하에 가라앉아 있는 것 같은 엘리펀트가 아니라 그녀가 그 아가씨의 손을 잡고 윈스롭이 그녀의 오라비를 꾀어 들어간 오스길리아스에서나 할 법한 말들. 윈스롭은 그 스스로도 능숙하게 구사하곤 하는 그 말씨에 염증을 느낀다.
그 아가씨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염려가 되는 거죠, 당신이 보낸 고양이가 나를 경계하듯이, 오늘은 그래서 나를 여기까지 불러낸 거 아닙니까.
"그 고양이, 당신과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이름을 똑같이 지은 게 잘못이었을까요."
"오도르만, 나는 그 얘기를 하고 싶어서 보자고 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 걱정을 하고 있긴 했죠."
"젠장, 그 말투 좀 그만둘 수 없습니까? 날 아주 고양이 취급 하고 계시는군."
……거칠게 말해서 미안해요.
윈스롭이 손바닥으로 입가를 가리고 시선을 피하면 오도르만은 여전히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 그가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할 때와 그를 영영 거절해 버릴 때와 똑같은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윈스롭은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을 주워담지도 못하고 던져버리지도 못한 채 벌을 서는 아이처럼 안절부절한다. 오도르만, 오도르만.
"나를 그렇게 대하지 마세요. 그렇게……."
먼 사람처럼, 먼 곳에 있는 사람처럼, 손을 뻗어서야 어색한 악수를 한 번 하고 지나쳐 갈 사람처럼.
내가 당신을 애틋하게 여기는 것처럼 당신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요.
뭐라고 말하기도 구차한 관계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헤메었다. 윈스롭은 바다 위에서 하늘을 잃어버린 항해자처럼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나아가고는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사랑이라고 말하자니 구차했고 혹은 진부하거나 어쩌면 허무맹랑했다. 오도르만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윈스롭은 그게 미소라고 생각했다. 그러는 편이 나았다. 윈스롭은 주저앉는 것처럼 숨을 내쉬었다.
"미안합니다."
윈스롭은 고개를 젓고, 그렇게 그가 지껄였던 모든 말을 없던 것으로 했다. 오도르만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기꺼워하는지 우스워하는지도 알 수 없다. 늘 그랬지. 윈스롭은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른다. 그때에도 사랑한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그건 너무 추상적인 감각이었다. 감정이라고 하면 더듬어볼 수도 없이 모호하고 희미해졌다. 일회적었고, 우스꽝스러운 것.
윈스롭은 길을 잃은 것은 그 하나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도르만은 여전히 그녀의 길 위에, 조 윈스롭과 언젠가 한번 겹쳐졌던 적이 있지만 언젠가에도 함께 할 일은 없을 그녀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뿐이라고. 길을 잃은 것은 그 하나뿐이라고.
"미안할 거 아닙니다. 내가 무심했지요?"
윈스롭은 그녀에게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고 사랑을 고백하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영원히 낫지 않을 무참한 상처를 입고 싶었다.
찌를 곳을 잃은 칼처럼 윈스롭은 고개를 저었다. 오도르만은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20세기AU 냥스롭 단문▼과 조금 이어지는 구석이 잇는 듯 업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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