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했다.

이착륙을 할 만한 시설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여전히 그곳은 국경이었다. 전쟁이 끝나서도 어쩌면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더더욱 제아무리 신원이 분명하고 목적이 명확해도 비행 허가를 받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찌저찌하여 허가가 떨어진다고 해도 의심을 살 것은 뻔한 일이다. 구석에서 벌어졌던 일이 그런 종류라는 것을 이해할 만큼은 자랐다. 자라지 않을 수 없었던 거지만. 니콜라는 기차를 탔다.

 상트율리아부터는 지나가는 마차를 얻어야 했다. 눈길을 끌고 싶지 않으니 반쯤 썩은 야채 상자들 사이에 엉덩이나 겨우 걸치고 시골길을 한참 덜컹거리게 된다. “저, 어르신.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여기? 여기는 아무것도 없는데.” “예에. 뭐.” “돌아올 때는 어쩌게?” “여차하면 걸어가지요.” 누군가 알아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전쟁 중일 때도 마녀의 솥단지 같던 동네였다. 모르는 식물의 뿌리 하나가 더 들어온다고 해서 흘깃거리지 않았다. 노인은 한쪽 눈이 희었다. 니콜라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나는 내일도 지나가는데 여차하면 태워 주고.”
 “밤을 여기서 지내진 않을 거라서요.”
 “얼어죽을 날씨는 아니니, 그러던지.”
 “감사합니다. 살펴 가십쇼.”

 사람으로 치면 노인만큼 나이들었을 당나귀가 느적느적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면 니콜라는 팔을 걷어붙였다. 흔적은 흉터 같아서 오래간 사람이 다니지 않은 풀숲 아래에도 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


*


 니콜라가 구석에 돌아온 것은 열네 살 여름 떠난 이후 처음이었다. 햇수로 세면 십 년이 넘었다. 전쟁이 격화되었을 때는 찾을 엄두도 낼 수 없었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형편이 삽시간에 좋아지지는 않았다. 소망이라는 것이 그렇지, 승전이든 패전이든 종전은 왔지만 언제나 소망한 대로의 모습으로는 아니다. 해는 조금씩 기울기 시작한다.

 얻어 탈 만한 게 제때 지나가지 않으면 밤을 여기서 지내게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들고 온 것이 없지않기는 하지만, 어깨의 가방을 추켜올리면서 니콜라는 늙은 당나귀처럼 걸었다. 그렇게나 돌아와 보고 싶었는데 막상 다다르니 겁이 났다.

 여기는 낯선 곳이었다.

 계속 한 곳에 사람들과 이어져 있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니콜라는 그간 멀리 떠돌아 왔다. 자리를 붙이고, 정식 사원이 되고, 신원을 보증할 만한 증명과 계약들이 생긴 다음에야 구석에 돌아올 수 있었다. 십 년을 넘겨서였다. 불탄 고아원은 폐허가 됐고 니콜라는 그럴싸한 것은 달리 기억해낼 수 없었다. 백조, 열쇠, 미로 따위의 일들 중에 선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남아 있는 것은 묵은 절망과 불씨 같은 슬픔뿐이다. 하기사 돌아온다는 말이 어울리는 곳은 아니었다. 여기는 내 집도 고향도 아니니.

 “…….”

 그러나 새것이 쌓이면 오래된 것은 더욱 깊어지는 법이라…….

 높이 자란 수풀을 헤쳤을 때 보인 것은 호수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작은 등이었다. 한쪽으로 땋아 묶은 머리칼, 무릎을 모아 앉은 긴 치맛자락은 풀물이 들 것을 염려하지도 않는 듯했다. 속에 무엇이 들었든 호수의 물결은 잔잔하고 깨끗했으므로 햇빛이 비출 때에는 더할 나위 없이 반짝거렸다. 니콜라의 목소리는 속삭임처럼 작았다. 소리높여 부르면 사라질 것만 같으니 어쩔 수 없다.

 “솔랴?”

 바람이 채 묶이지 않은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니콜라는 거기서 한 걸음을 더 떼었다. 팔에서 들고 있던 가방이 주륵 흘러내렸지만 도리어 놓아 버렸다. 니콜라는 상상했다. 그가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그 호숫가에서 다시 모든 것을 찾게 되는 허무맹랑한 상상이다. 언제나와 그렇듯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니콜라는 몇 걸음을 달음질하고 마지막에는 쓰러지듯이 무릎꿇었다. 오르솔랴 이벳은 천천히 돌아보았다.


*


 니콜라는 갈증으로 절박한 사람이 물을 찾듯 오르솔랴를 끌어안았다. 피할 틈도 없이 격한 포옹이었다. 붙잡히듯이 끌어안긴 둥근 어깨가 잠깐 경직하더니, 이윽고 마주 감싸안아 왔다. 꼴랴. 조금 더 성숙해진 목소리였다. 깊이 있고 우아했다. 품안에 들어오는 몸도 이제 열 네 살의 것은 아니다, 니콜라 유제니오가 그러하듯이.

 “왜. 어떻게……, 언제, 언제부터.”
 “쉬이……. 나 여기 있어, 니콜라.”
 
 하지만 나이를 먹은 것이 우습게, 니콜라는 말을 더듬고 목소리를 떨었다. 오르솔랴는 놀라지 않았다. 니콜라는 엷은 웃음을 띤 그 얼굴이 환상이거나 기억이거나 사라질까봐 그 뺨에 손을 댄 채 증거를 찾아 입술을 뻐끔거렸다. 기념할만한 날은 아니지만 기억할만한 날이기는 했다. 이 호숫가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상상을 했어도 정말 누군가를 만나게 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니콜라는 다시 한 번 오르솔랴를 강하게 끌어안고, 그러나 얼굴이 젖는 것을 느꼈다. 오르솔랴도 알았을 것이다. 가련한 등을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

 “오르솔랴.”
 “응. 꼴랴.”

 몇 번이고 니콜라는 솔랴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은 언제나 있었다. 그들은 섞어지지 않았고…….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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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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