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2019. 1. 21. 14:28



아버지 없이 아이를 낳았을 때 여자와 여자의 어머니와 죽은 오라비의 아내 딸들은 이것이 그럭저럭 돈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B I R T H




“으악!”
꼴사나운 비명 다음에는 무언가 무너지고 엎어지고 와장창 데구르르 구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폴리는 자기도 모르게 멈춰섰지만, 뒤를 돌아보는 게 좋을지 그냥 모른 척 가는 게 나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 몇 번 눈을 깜박였다. 아무리 어두운 곳에서도 햇빛이 드는 것처럼 보이는 금빛 속눈썹이었다. 골목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남자의 시선이 한동안 그 얼굴에 머무른다.

아.

“지난번에도 봤어, 그렇지?”

그래서 폴리는 뒤돌아보았다.

일곱 살 여자아이, 선명한 금발에 연둣빛 눈동자를 가진 일곱 살의 여자아이에게 이 골목은 해가 높건 졌건 발을 들일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그러나 좁고 구불구불하게 그래서 더 길고 끝없이 이어지는 사창가의 가장 끝에, 그래서 같은 길가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길의 주소를 쓰는 집에 폴리는 살고 있었으며 드물지 않게 여러 가지의 여러 개의 시선에 노출되었다. 지금도 뒤돌아섰으나 시선은 사라지지 않고 따라붙고 있었다. 폴리는 다급하지 않게 말을 이었다.

“도와줘서 고마웠어.”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 건 분명하지 않은 소속이었다. 이 거리 아이 같지 않게 부드럽고 혈색이 도는 흰 뺨, 대단할 것까지는 아니어도 결코 남루하다고도 평범하다고도 할 수 없는 옷차림, 끼니를 굶어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살결 같은 것. 폴리는 들고 있던 바구니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쥐어 꺼냈다.
요컨대 이것은 과시였다. 호되게 넘어진 것 같은 눈앞의 아이가 아니라 등 뒤에 서서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남자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거리 아이가 아니다. 자선을 베푸는 계급이다. 오늘은 사정이 있을 뿐이다. 나를 그런 식으로 쳐다본다면 불필요한 분란에 휘말릴 것이다……. 스스로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어도 의도는 명백했다. 폴리는 자기 손에 들린 것이 손수건이라는 걸 내밀고 나서야 알았다.

“묻었다.”

바구니에 들어 있던 건 자수를 맡긴 천들이었다. 가장 위에 곱게 접혀 있던 손수건은 깨끗하게 세탁이 되었음에도 은은한 향내가 배어 있었다. 폴리는 그 손수건으로 흙탕물이 튄 뺨을 닦아 주었다. 엄마의 손수건이었다. 없어져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심부름 다녀 오는 거야? 나도 그런데!”

눈이 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길은 더럽고 미끄러웠다. 제나이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방금 자신이 어떻게 이용당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설령 똑같이 심부름이라는 단어를 쓰더라도 폴리가 한 일과 이 아이가 한 일이 같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거였다. 폴리의 바구니에서는 수를 놓은 비단 손수건 한 장이 사라져도 상관없지만 넘어져 버린 소녀는 단추 한 개의 갯수도 달라져서는 안 됐다. 폴리는 그 차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구분하지는 못하면서도 본능적으로 감각한다. 결코 몰라야 했으므로 그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버지가 보냈다는 새 옷을 입히는 할머니가 원하던 모양으로 웃었을 뿐이었다.

“다친 데는 없어?”

일어나면 그 애는 앳된 얼굴에 비해 키가 컸다. 고개를 젓는 얼굴은 거리를 오가며 몇 번인가 지나쳤기 때문일까, 제대로 대화한 적도 없는데 익숙했다. 친구인지, 가족인지, 누군가 이 애를 부르는 이름을 들었던 것 같은데……. 더러워진 손수건을 신경쓰는 것 같아 폴리는 아예 그녀의 손에 손수건을 쥐어 주었다. 가져! 줄게. 그야말로 알량하고 비겁한 보상.
계절마다 폴리의 아버지인 적 없는 남자는 사치스러운 물건들을 그 길끝의 집으로 보냈다. 귀족이 될 지도 몰라. 지금도 재산은 으리으리하잖아. 결혼하면 애를 데려갈까? 그 부인 쪽에서 허락하겠어? 이미 결혼했는데 어쩌겠어!

……등 뒤의 시선은 그때에서야 무거운 구둣발 소리와 함께 멀어지기 시작했다. 손수건을 손에 든 여자아이는 잠시 입술을 달싹이더니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폴리는 그다지 미안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잘못된 일 없었다. 남자는 지나갔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넘어졌던 소녀는 일어났다. 폴리, 대답하려다 말고 폴리는 잠시 침묵한다.

입적하게 되면 기록이 깨끗한 편이 좋을 거라는 말에 폴리는 아직 성도 없었다. 여자애는 어차피 없는 애여도 있는 애여도 그만. 그래서 페넬로페라는 우스꽝스러울만큼 고전적인 이름과 폴리라는 그보다는 부를 만한 애칭이 그녀를 일컬었다. 상대가 어른이라면 페넬로페라고, 아이라면 폴리라고 소개했다. 별 것 아닌 질문에 대답이 없자 맞은편에서는 안절부절하는 기색이 완연하다. 폴리는 안심하라는 듯이 웃어 보였지만 마음 한구석이 두근거렸다. 이 애한테는 다른 이름을 알려주어도 좋지 않을까?

폴리의 것도 아닌 손수건을 조심스럽게 움켜쥐고, 그저 이름을 묻는 일에도 망설이며, 얼마든지 빼앗고 가로채고 헤집어놓을 수 있었던 언젠가의 첫 만남에서 그녀를 고이 놓아 보내 주었던 이 소녀에게…….

“……넬로피야.”

넬로피는 거울 속에 숨겨 두었던 이름을 꺼내 보았다. 이 입술에게는 불려져도 좋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