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xed star/싹
Kleeblatt
새/
2018. 7. 22. 23:49
"너 정말 미워!"
니콜라는 왼뺨에 손바닥을 대고 눈을 껌벅였다. 아리엘 로즈는 격앙되어 있었다, 팔다리에 붕대를 감싼 채로도 뺨은 장밋빛에 눈동자엔 청명한 여름하늘이 여전한데 울 것 처럼도 보였다. 왜? 아픔보다 의문이 먼저였다, 사실 별로 아프지 않기도 하다.
사람을 때리는 건 퍽 연습이 필요한 일이었다. 아리엘 로즈는 그런 연습 따위에 익숙해질 사람이 아니기도 했고.
"뭐?"
하지만 제대로 물어볼 틈도 없이 아리엘은 영문 모를 원망을 던지고는 뒤돌아버린 채였다. 걸음이 평소답지않게 거칠고 빠른 게 말을 붙일 생각도 말라는 의사표시다. 붙잡았다가는 가벼운 따귀로는 어림도 없을 분위기였다. 기세에 눌려 멍청하게 입만 뻐끔대던 니콜라가 정신을 차린 건 결국 아리엘이 시야에서 사라진 다음이다.
"……뭔데?!"
억울함을 토로할 기회도 없었다, 니콜라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 기둥 쪽에 멀찍이 선 엘리엇과 눈이 마주친다. 난처한 듯 살짝 눈썹을 늘어트리는 게 처음부터 본 게 분명했다. 니콜라가 봤어? 하고 쳐다보면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쟤 또 왜 저러는데?!"
"네가 잘못했어, 니콜라."
"뭐?"
하지만 제대로 물어볼 틈도 없이 아리엘은 영문 모를 원망을 던지고는 뒤돌아버린 채였다. 걸음이 평소답지않게 거칠고 빠른 게 말을 붙일 생각도 말라는 의사표시다. 붙잡았다가는 가벼운 따귀로는 어림도 없을 분위기였다. 기세에 눌려 멍청하게 입만 뻐끔대던 니콜라가 정신을 차린 건 결국 아리엘이 시야에서 사라진 다음이다.
"……뭔데?!"
억울함을 토로할 기회도 없었다, 니콜라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 기둥 쪽에 멀찍이 선 엘리엇과 눈이 마주친다. 난처한 듯 살짝 눈썹을 늘어트리는 게 처음부터 본 게 분명했다. 니콜라가 봤어? 하고 쳐다보면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쟤 또 왜 저러는데?!"
"네가 잘못했어, 니콜라."
"내가 뭘!"
엘리엇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말을 고르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가 타박타박 니콜라의 옆에 와서 앉았다. 5층 중정에는 긴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고 니콜라가 앉아 있던 의자는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도 모자라지 않았다. 엘리엇이 앉고 남은 자리가 마치 아리엘의 빈 자리 같아서 니콜라는 홱 고개를 돌려 버린다. "니콜라." 엄한 목소리.
엘리엇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말을 고르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가 타박타박 니콜라의 옆에 와서 앉았다. 5층 중정에는 긴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고 니콜라가 앉아 있던 의자는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도 모자라지 않았다. 엘리엇이 앉고 남은 자리가 마치 아리엘의 빈 자리 같아서 니콜라는 홱 고개를 돌려 버린다. "니콜라." 엄한 목소리.
하지만 달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다. 니콜라는 중얼거린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음, 그러니까."
엘리엇이 생각하고 있으면 니콜라는 도무지 방해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글을 쓰는 동안 기다릴 필요가 없는데도, 습관이 된 건지 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잠시 침묵했던 엘리엇은 여상한 어조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엿들었거든, 복도를 지나가다가 네 얘기가 들리길래. 군인들이랑, 의사들이랑, 또 다른 어른들이랑.
"다른 시설로 가겠다고 했다며."
병원 외부에는 여전히 기자와 군인들이 들끓고 있었다. 의료진들은 말을 아꼈지만 상황이 퍽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은 아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쳤고 다친 아이들의 대부분이 아직 낫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바깥출입은 금지되어 있었다. 보안은 고아원에 있을 때보다 몇 배는 삼엄했다. 아이들이 병실 밖을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오후의 두어 시간 정도, 니콜라는 내부의 천장이 뚫려 해가 드는 이 5층 중정을 좋아했고 아이들은 이 시간 니콜라를 찾을 일이 있으면 이 곳으로 와야 한다는 걸 알았다.
"너 혼자서."
"확정된 얘기는 아니야."
"아리엘이 화가 났어."
그래서 아리엘 로즈, 니콜라의 소중해 마지않는 그 여자아이는 곧장 이 곳으로 달려왔다는 이야기였다, 어려운 곳으로 혼자 떨어져 나가야 한다면 자기를 보내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은 오만을 휘두르는 니콜라의 뺨을 한 대 야무지게 후려갈겨서 그 멍청한 머리에 제정신을 찾아넣으려고. 한숨을 깊이 쉰 니콜라는 다리를 쭉 펴고 몸을 늘어트렸다. 너넨 또 어쩌다 그걸 들었냐.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서 하늘로 시선을 던진다.
"정강이 안 까인 게 다행인가."
"어떻게 된 거야? 왜 혼자서 다른 곳으로 간다고 했어?"
"나 어차피 반 년 뒤면 나가, 엘리엇."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엘리엇?"
엘리엇 마예프스키는 상냥한 소년이었다. 어른스러웠고, 믿음직했고, 다정하고……. 니콜라는 남몰래 그를 부러워한 적 있었다. 그 성품이나, 색깔이나, 기도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모으던 손 같은 것들을. 엘리엇이 의자에서 미련 없이 일어나면 니콜라는 붙잡은 손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는 어린아이처럼 굴러떨어지듯이 자세를 바로했다. 물론 그가 다시없는 열정을 기백과 굳은 심지를 품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 알고 있었는데.
"니콜라. 우린 널 좋아해."
누구도 모르지 않았다. 모르기에는 엘리엇도 나이가 많았다. 모두가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수는 없으며 그건 우리들이 하늘 아래 가장 구석에 모여들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셋 중에 하나 꼴로 자리가 비었어도 한 구석에 있었던 모두가 같은 시설로 이관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우리는 헤어져야 했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으므로 약속도 남기지 못했다. 엘리엇은 달래듯이 아리엘의 손이 닿았던 니콜라의 왼뺨에 손바닥을 얹는다.
"하지만 이럴 때는 네가 미워."
니콜라는 눈을 깜박였다.
온기가 떨어져 나가고, 아리엘이 간 방향으로 엘리엇이 뒤돌아서 멀어지고 사라지기까지 니콜라는 그대로 앉아있기밖에 하지 못했다. 자기 머리를 긁적이고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중얼거리면 이번에야말로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다. ……니콜라는 사과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자기 결정을 번복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니콜라는 문득 젖어 있는 뺨을 손등으로 닦아낸다.
5층 중정은 천장이 뚫려 빛이 들었다. 니콜라는 어떻게도 하지 못하고 그저 이 정원의, 세 명이 앉기에도 모자라지 않은 의자에 홀로 앉아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흘려보낸다. 문득 고개를 들면 다시 뺨이 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