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조사
등 뒤에서 느리게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삐걱이는 경첩의 소리다. 두 짝의 무거운 나무가 맞물리고 잠금쇠가 돌아가기까지 당신은 붙잡힌 것처럼 문을 등뒤에 둔 채 가만히 서 있다. 한번도 본 적 없지만 이곳이 지구에 남겨진 헤스 예르비의 서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START>>
* (무감한 눈으로 서재를 둘러본다. 알지 못하는 이미지는 꿈으로 등장할 수 없음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이것은 주입된 이미지인가?)
이곳은 춥고 어둡다. 문을 등 뒤에 두고 왼쪽은 하염없이 깊은 서가들이며, 오른쪽에는 넓은 창이 벽을 차지하고 있다. 보온에 유리하지 못한 인테리어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구시대의 건축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왼쪽>>
>>오른쪽>>
* (왼쪽으로 걷는다.)
높이는 당신의 키보다 조금 더, 너비는 당신 팔 하나, 두께며 크기가 다른 책들이 난잡하게 꽂혀 있어서 깊이는 알 수 없지만 무거운 고동색 서가들이 삼면을 에워싸고 있다. 바닥에는 그 서가들이 토해낸 것 같은 책 더미들, 가장 구석에는 일인용 소파가 놓여 있다.
>>서가>>
>>책 더미>>
>>소파>>
* (소파를 둘러보며 위생상태를 체크한다.)
아마도 붉은 색 소파다. 팔걸이에는 페이즐리 무늬의 두꺼운 숄이 얹혀 있다.
>>앉는다>>
>>앉지 않고 살펴보기만 한다>>
* (앉지 않고 살펴보기만 한다.)
한때는 안락했을 것 같지만, 앉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현명한 선택인 것 같다. 소파는 회색 먼지로 덮여 있고 숄도 마찬가지다.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주의해서 살펴보면 등받이 틈에 안경이 끼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비용이었을까?
>>자유 선택>>
* (청소를 하려다가 방 주인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메일만 전송하기로 하고 서가를 본다.)
* 의외라고 할까?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은 대개 오래 된 장정으로 묶인 시나 소설들이다. 전집이 많지만 책을 여러 번 꺼냈다가 도로 넣은 듯 쌓인 먼지가 없고 순서가 뒤죽박죽인 점으로 보아 실제로 읽히곤 했던 듯 하다. 한 권을 꺼내 볼 수 있다.
>>오릭스와 크레이크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 (<오릭스와 크레이그>를 꺼낸다.)
책을 열어 넘겨 보면 종이의 감족은 무디고 낯설다. 오래 된 소설이었다. 책에는 아무 표시도 없었지만, 자주 펼쳐본 듯 자연스럽게 멈추어지는 페이지를 찾을 수 있다. 한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이지, 아직도 내겐 이상이 있어. 그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뿐이지."
>>자유행동>>
*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를 꺼내본다.)
책을 제 자리에 돌려 놓고 다른 책을 꺼내자 손아래로 책의 내지가 후드득 쏟아진다. 책이 낡아 접착제가 다 떨어져 나갔기 때문인 듯 했다. 바닥에 흩뿌려져 버린 탓에 주워 모으기도 마땅찮다.
>>책더미>>
* (책더미를 뒤적인다. 정리하고자 하는 욕망이 고개를 든다...)
낡은 카페트 위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책들은 탑이라면 오래 전에 쌓여 이미 한 차례 무너진 생김새를 하고 있다. 내키는 대로 바닥에 앉아 주변에 늘어놓았었 던 것처럼 가운데 둥그렇게 원이 그려진다.
>>앉는다>>
>>앉지 않고 살펴본다>>
* (앉지 않고 살펴본다. 당연하게도.)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과는 달리 바닥에 있는 것은 갖은 연구물들이다. 휘갈겨 쓴 메모, 초안부터 완성된 논문이나 학술지, 단행본 따위까지. 우에리 치케의 박사논문이 이 책무덤에서 한켠으로 비껴 나와 있다. 속이 빈 몇 개의 편지봉투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휴스턴에서 온 것이다.
>>자유행동
*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는 방에서 빠져나온다. 쓸쓸함은 느끼지 않는다.)
다시, 닫힌 문이다. 잠금쇠의 소리를 들었었는데, 나갈 수 있을까?
>>방문을 열어 본다>>
>>오른쪽으로 간다>>
* (방문을 열어본다.)
문고리를 잡는 순간 이것은 문이 아니고 문의 형상일 뿐인 어떤 경계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손을 떼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문은 당신을 잡아당긴다. 삼키는 것에 가깝다. 문은 열리지 않은 채로 끝없이 깊어지기만 한다. 밤처럼.
우주처럼.
길을 잃게 될 거라는, 길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직감하는 순간 등 뒤에서 웃음 소리가 들린 듯 하다. 오른편에서, 벽을 덮은 커다란 창을 반쯤 가리고 있는 커튼 너머로부터…….
(조사 종료)
발디딘 땅에는 아무 색도 없다. 구름은 멈춰 있으며,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회색 황야다. 당신은 시간을 가늠할 수 없고, 계절도 추측할 수 없다. 세상은 막막해 보인다. 걸음 한 번을 떼기 위해서는 뿌리를 뽑아내는 나무처럼 애써야 한다. 가운데땅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START>>
*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처음 보는 장소였다. 메마른 풍경을 감상이라도 하듯 조금 느린 걸음으로 발을 뗀다.
발밑을 붙들듯 했던 첫 걸음을 떼고 나면 걷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너무 쉬운 일이 된다. 몸이 가볍고 당신은 한 걸음에 말이 뛰는 세 걸음을 지나는 것 같은 속도감을 느낀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앞에는 기이한 광경이다. 왼쪽으로는 바싹 말라 갈라진 땅이, 오른쪽으로는 물길이 날 것처럼 새카맣게 젖은 땅이다. 칼로 베어 가른 것만 같다.
>>왼쪽>>
>>오른쪽>>
* 기묘한 속도감을 느끼며 한참동안 땅을 박차고 걸었다. 양 갈래로 갈라진 땅을 바라보며 가늠하듯 고개를 기울였다가 왼쪽으로 향한다. 마른 땅을 디딘다.
여름 곤충의 울음소리가 쨍하게 귓전을 때린다. 삽시간에 불 같은 더위가 모든 피부에 들러붙는다. 그 다음에는 병장기 소리, 칼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간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피한다>>
*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갑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오크들, 인간들, 어느 한 쪽이 우세하지 않은 접전이며 난전이다. 발이 빨라지는 중에 누군가 덥석 팔을 붙잡아 온다.
"미쳤어!?"
>>잡힌다>>
>>반격한다>>
* 경계하지 않고 있었기에 팔이 잡히자 몸이 그대로 맥없이 휘청했다. 반격하지 않고 순순히 잡혔다. 누구인지 돌아본다.
소년이다. 아니, 소년은 아닌가? 투구를 쓴, 피투성이의 인간 청년. 건장한 체격에 오른손에는 대검, 방패를 들고 있었을 왼손은 당신 팔을 잡고 있다. "칼 무서운 줄 모르고 어딜 걸어들어가고 있는……!"
* 묘하게 낯이 익은 듯도 해 눈살을 좁힌 채 가만히 얼굴을 뜯어본다. 반사적으로 대답한다. "걸어들어갈 셈은 아니었소만."
"아."
그제서야, 그러니까 전장으로부터 한참을 잡아 끌어 나오고 나서야 청년은 당신이 요정이라는 것을 알아본 듯 하다. 입술을 우물거리더니 투구를 벗는다. "실례했습니다." 당신이 이미 알아본 대로다. 한 발 먼저 자란 몸에 비해 얼굴에는 아직도 앳된 구석이 역력했다. "저는 그러니까." 스물은 넘었을까. "윈스롭이라고 합니다."
* "이탈라우레라 하오. 그대도 참전한 것인가?" 어려 뵈는데. 스물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얼굴을 가만히 응시한다.
"참전?" 윈스롭은 이상한 말을 듣는다는 듯이 당신을 쳐다본다. "뭐,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난 용병입니다." 이탈라우레가 알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 자신만만하고, 무서워할 줄 모르는. "그래서, 도움을 주시려고 하는 거라면……."
>>전투를 돕겠다고 한다>>
>>부탁할 일이 있는지 묻는다>>
* "내 도움이 필요하오?" 부탁할 일이 있는지 묻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말과는 달리 청년은 그다지 고마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불청객을 귀찮아하는 기색이다. 그 기색이 얼굴에 그대로 비추어지는 것도 당신이 아는 사람과는 다른 점이고. "저 쪽에서 온 거지요?" 당신이 왔던 방향을 가리키며 이미 제안을 승낙하기라도 한 것처럼 투구를 쓴다.
"그쪽에서 원군이 오고 있을 겁니다. 보시다시피 버티는 것도 한계여서요."
"전황을 알리고 걸음을 서둘러 달라고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유행동>>
* 그의 말대로 왔던 길을 찬찬히 되짚어 가 보았다. 원군이 오고 있을까?
다시 먼 곳까지 회색 황야가 펼쳐진 곳으로 돌아온다. 진 땅과 마른 땅의 경계에 닿으면 그림자처럼 따라오던 온갖 소리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이곳은 십여 년 전 그 땅이 아니며 여기 없는 원군이 그때에는 그곳을 향해 달렸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그 떄에도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는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희미하게 절고 있었던 다리나, 같은 사람의 얼굴 같지 않게 낯설고 자신만만한 표정이나, 당신을 보내고 다시 전장으로 뛰어들던 성큼한 걸음 같은 것들도…….
당신 앞에는 이제 새카맣게 젖은 땅이다.
>>젖은 땅으로 간다>>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간다>>
* 젖은 땅으로 향합니다.
이번에 당신을 맞이하는 것은 두터운 나무에 사정없이 꽂혀 박히는 화살촉의 소리들이다. 비는 땅을 꿰뚫어 버릴 것처럼 쏟아져 내린다. 요정의 시야까지 막아 버리는 폭우다. 멀리 희미한 빛이 깜박인다.
>>뛰어간다>>
>>기척을 죽이고 다가간다>>
* 기척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접근해 봅니다.
낡은 오두막이다. 폭우 속에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어 보이지만, 어엿한 빛과 온기가 창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창에는 커튼이 쳐져 있어 안을 볼 수는 없는데……. 문을 두드릴까?
>>문을 두드린다>>
>>창문틈을 훔쳐본다>>
* 문을 두드려 봅니다.
"누구시오?"
빗소리에 묻혔는지 몇 번을 두드리고 나서야 안에서 기척이 난다. 문은 무겁거나 빡빡하게 맞물린 것도 아닌데 느리게 열린다. 얼굴을 내미는 것은 허리가 조금 굽은 노인이다. 인간. 남자.
"이 빗속에 여행이라도 하고 있나?"
>>그렇다>>
>>말할 수 없는 사정이>>
* "그렇소. 우연히 큰 비를 만나…" 적당히 얼버무리며 남자의 얼굴을 살핀다. 익숙한 얼굴일까?
노인은 경계하고 있는 것을 숨기지 않으며 허리를 편다. 시선이 마주치면 나뭇빛 눈이 반쯤 흐려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 어쩌면 직감했던 그대로, 하지만 차마 상상한 적 없는 모습으로, 헤어진 뒤로 스무 해, 서른 해는 더 지난 모습의 윈스롭은 당신을 집 안으로 들인다.
"들통날 거짓말은 집어치우게."
>>나를 기억하지 못하나?>>
>>거짓말이 아니다>>
* 미진한 미소를 띠며 그가 인도하는대로 들어가 앉았다. "나를 기억하오?"
노인은 얼핏 웃은 듯 하다. 그 순간에는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윈스롭처럼 보인다. "보다시피 내가 가진 것은 별로 없고, 그 중에서도 사람은 하나도 없네." 다리를 조금 저는 것을 제외하면 움직이는 모습은 달리 불편해 보이지 않았지만 그건 그가 집 안에 있는 기물의 위치를 모두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른 수건을 건네는 손의 방향은 미묘하게 당신을 빗겨 가 있다.
>>수건을 받는다>>
>>이름을 말한다>>
* 눈가에 희미한 애상이 깃든다. 수건을 받아들었다. "정말로 그러한가? 어찌 이리 홀로 되었소."
"……." 대답 없이 노인은 익숙하게 집 안을 돌아다닌다. 끓인 물에 차를 우려 내놓고 몇 가지 마른 음식을 담아 내면 집주인으로서의 도의는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일도 비는 그치지 않겠지만 오늘 밤 뿐이오. 물이 불기 전에 길을 재촉하는 게 나을 거고."
>>이름을 말한다
>>음식을 먹는다
* "… 내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하오? 이탈라우레요." 양 손으로 찻잔을 감싸쥘 뿐 마시지 않았다.
노인은 자리를 펴려는 듯 부산하던 걸음을 못박힌 듯 멈춘다. 느리게 돌아본다. "어디서 그 이름을 알았지." 순간.
윈스롭은 다시 청년이 되는 듯 하다. 한시도 떼어놓지 않던 대검처럼 날이 선다. 윈스롭은 이탈라우레를 마구잡이로 자리에서 일으켰다. "나가."
>>버틴다>>
>>끌려나간다>>
* 노인의 힘을 버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의 손을 끌어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제 오른뺨에 가져다대고 조금 빨라진 목소리로. "윈스롭. 나라니까."
"놔!" 거세게 뿌리치는 손은 그 뺨을 거의 후려치다시피 한다. 자기 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면서도 윈스롭은 마구 소리를 지르고 당신을 떠민다. "거짓말 하지마!"
"그럴 리 없어!"
"그는 떠났어!"
"돌아오지 못해!"
윈스롭은 마치 무서운 것을 대하듯, 어느 순간 달려들다 말고 뒷걸음질친다. 당신을 끌어낼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윈스롭은 몇 걸음을 물러서더니 대뜸 뒤를 돌아 달려나간다. 살펴 닫았던 문을 부서져라 열고, 여전히 쏟아지고 있는 폭우 속으로, 다리를 절고 눈이 흐려진 노인의 몸은 빗속에서 무너지거나 쓸려가거나 파묻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은 한 걸음도 떼지 못한다. 낡은 나무 바닥이 늪처럼 당신 발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나면 빗소리가 잦아들고, 따스한 불빛이 색을 잃으면서……, 잠이 당신을 종용한다. 이제 그만 깨어나라. 비가 그친 뒤에야 돌아올 사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라.
(조사 종료)